공관복음서 문제(2): 문서설, 양식 비판, 편집 비판
4. 문서설
1) 두 문서설
일부 학자들은 처음부터 교회에 마가복음(또는 초기 문서)과, Q자료(독일어로 '자료'라는 뜻을 가진 Quelle에서 유래된 이름임)라고 부르는 두 개의 문서가 있었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태와 누가가 마가복음과 Q자료를 참고해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서를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세 복음서에 나나타는 공통점은 마가복음을 참고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며, 마가복음에는 없지만 마태와 누가복음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자료는 그들이 Q자료를 참고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차이점을 갖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Q자료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가. 사역의 준비
세례요한의 설교(눅 3:7-9, 마 3:7-10), 예수의 시험(눅 4:1-13, 마 4:1-11)
나. 설교(산상수훈)
8복(눅 6:20-23, 마 5:3,4,6,11,12), 원수사랑(눅 6:27- 36, 마 5:39-42,44-48, 7:12), 판단금지(눅 6:37-42, 마 7:1-5,10,24, 25, 15:14), 반석, 모래 위에 지은 집(눅 6:47-49, 마 7:24-27)
다. 이야기
백부장의 종(눅 7:1-10, 마 7:28, 8:5-10,13), 세례요한의 질문(눅 7:18-20, 마 11:2,3)과 주님의 답변(눅 7:22-35, 마 11:4-19)
라. 제자도
희생(눅 9:57-60, 마 8:9-22). 선교의 임무(눅 10:2-12, 마 9:37,38, 10:9-15), 회개하지 않는 도시에 대한 경고(눅 10:13-15, 마 11: 20-24)
마. 여러 가지 말씀들
기도에 대한 교훈(눅 11:2-4, 마 6:9-13, 눅 11:9-13, 마 7:7-11), 바알세불의 분쟁(눅 11:14-22, 마 12:12-32), 더러운 귀신(눅 11:24-26, 마 12:43-45), 요나의 표적(눅 11:29-32, 마 12:38-42), 빛에 대하여(눅 11:33-36, 마 5:15, 6:22-23).
바. 교훈: 바리새인에 대한 교훈 경고(눅 11:37-12:1, 마 23:1-36)
사. 상세한 말씀들
두려움 없는 신앙고백(눅 12:2-12, 마 10:19, 26-33), 세상에 대한 염려(눅 12:22-34, 마 6:19-21,25-33), 신실함(눅 12:39-46, 마 24:43-51), 시대 분별(눅 12:51-56, 마 10:34-36, 16:2-3), 대적과의 화해(눅 12:57-59, 마 5:25-26)
아. 비유들: 겨자와 누룩의 비유(눅 13:18-21, 마 13:31-33).
자. 기타
이스라엘의 비난, 예루살렘을 향한 탄식, 제자의 대가, 두 주인을 섬기는 일, 율법과 이혼, 화, 용서, 믿음에 대하여, 인자의 날.....
2) 네 문서설
스트리터(B. H. Streeter)는 두 문서설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또 다른 주장을 했습니다. 그는 위에서 말한 두 문서(마가복음과 Q문서) 외에 마태와 누가가 따로 참고했던 두 개의 문서(M문서, L문서)가 더 있었다고 가정을 했습니다. 그는 마태는 마가복음, Q문서, M문서를 참고해서 마태복음을 기록했고, 누가는 마가복음, Q문서, L문서를 참고해서 누가복음을 기록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네 가지 문서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그는 마가복음은 로마에서 기록되었고, Q자료는 최초의 이방인 선교 기지였던 안디옥에서 기록되었으며, 마태복음은 이 두 문서와 예루살렘에 있었던 구전 문서인 M문서를 참고해서 팔레스타인에서 기록되었고, 누가복음은 위의 두 문서와 가이사랴에 있었던 구전문서인 L문서를 참고해서 기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M문서와 L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가. M문서(예루살렘에 있던 구전 문서)
1) 탄생 기사(마 1:1-18)
2) 예수의 세례에 대한 요한의 망설임(3:14-)
3) 물위를 걷는 베드로(14:28-31)
4) 물고기 입에서 나온 동전(17:24-27)
5) 대제사장과 유다의 거래(26:14-16)
6) 빌라도의 손 씻음(27:24)
7) 지진과 성도들의 부활(27:51-53)
8) 파숫꾼의 언급, 돌을 굴리는 천사와 감시병의 매수(27:62-28:15).
나. L문서(가이사랴에 있던 구전 문서)
1) 탄생 기사
2) 갈릴리 시대
나사렛에서의 기적(4:16-30), 기적적인 어획(5:1-11), 나인성에서의 과부의 독자(7:11-17), 죄지은 여인(7:36-50), 수종드는 여인(8:1-3)
3) 여행 기사
사마리아 마을(4:51-56), 70인의 전도(10:1-16), 마리아와 마르다(10:38-42), 예수의 모친이 복됨을 선언(11:27-28), 귀신들린 여인(13:10-17), 고창병 걸린 사람(14:1-6), 10명의 문둥병자(17:11-19), 삭개오(19:1-10)
4) 수난 기사
최후의 만찬 제정(22:15-30), 피같이 흐른 땀(22:40-46), 체포(22:47-53), 세 번의 부인(22:54-23:16), 회개하는 강도(23:39-43)
5) 부활 기사
무덤 가의 여인들(24:1-12), 엠마오 가는 제자(24:13-35), 예루살렘에 나타남(24:36-49), 승천(24:50-53)
5. 양식 비평(form criticism)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문서설에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위에서 말한 "세 개의 문서가 기록되기 전", 즉 "구전으로 복음이 전달되던 시기"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서가 기록되기 전에 예수님의 가르침은 전체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여러 가지 단편적인 양식들(비유, 설화, 교훈, 전설, 신화 등)로 나뉘어서 존재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복음서 내용을 분해해서 다시 작은 양식들로 다시 나누려고 시도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복음서가 기록되기 전의 여러 가지 양식(Form)들을 강조했기 때문에, 그들을 "양식사학파"라고 불렀으며, 또한 그들의 연구방법을 "양식 비평"(form criticism)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이론의 중심에는 "불트만의 비신화화" 이론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불트만은 모든 복음서가 예수님의 말씀은 아니며, 복음서의 각 양식들 안에 예수님의 말씀이 부분적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복음서의 각 양식들은 주후 1세기의 비과학적인 세계관에 기초해서 기록했기 때문에 비역사적인 신화와 전설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현대인들이 진정한 예수님의 메시지를 찾기 위해서는 이러한 비과학적인 신화나 전설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복음서에서 기적이나 초월적인 내용을 모두 배제하고 참된 예수님의 메시지를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그의 연구 방법을 "불트만의 비신화화"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복음서가 기록되기 전에 구전으로 복음이 전파되던 시대의 메시지 양식을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비신화화 이론은 복음서를 비역사적인 신화로 전락시키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이야기나 부활과 같은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주장은 전통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반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6. 신학적 편집 이론
위에서 말한 양식사학파 학자들은 복음서 저자들이 복음서를 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미 존재하던 여러 가지 복음서 양식들 중에서 여러 가지 자료들을 선택해서 그것을 편집해서 만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콘젤만이나 마르크젠같은 사람들은 이러한 양식사학파 학자들의 이론을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양식사학파 학자들이 복음서 저자들을 복음서 저자가 아니라 여러 자료를 취사 선택해서 편집한 편집자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난을 했습니다. 마르크젠은 복음서를 연구할 때에 다음과 같은 3가지 상황들을 모두 다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1) 예수님 당시의 상황
2) 복음서가 기록된 당시의 교회 상황
3) 복음서를 기록한 저자들의 신학적 입장
양식사학파 사람들은 복음서 기록에 영향을 미친 것은 복음서가 기록된 당시의 교회 상황(2)번)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젠은 복음서 기록에 영향을 미친 요소로 복음서를 기록한 저자들의 신학적 입장(3)번)을 더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입장을 양식사학파와 구별하기 위해서 자신을 "편집사학파"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편집사학파 학자들은 양식사학파처럼 복음서의 내용을 여러 가지 단편적인 양식들로 나누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서는 복음서 저자가 자신의 신학을 가지고 기록한 하나의 완전한 작품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서를 연구할 때에 그것을 기록한 저자의 신학적 입장에서 전체적으로 연구할 때에 그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요즘 나오는 복음서강해집들을 보면 "마태 신학", "누가 신학" 등과 같은 이름으로 된 책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들이 복음서를 기록한 저자들의 신학적인 입장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러한 편집사학파의 입장은 복음서 저자들을 편집자로 만들고, 복음서를 단편 자료들로 분해한 양식사학파 학자들의 오류를 지적하고, 또한 복음서를 연구할 때에 복음서 저자의 신학적인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점에서 큰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편집사학파의 단점은 복음서를 기록할 때의 공동체의 신학과 복음서를 기록한 저자의 신학을 너무 분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의 초대 교회 공동체나 복음서를 기록한 저자들은 모두 다 그리스도와 사도들로부터 동일한 신학을 전수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공동체와 복음서 저자들의 신학이 큰 차이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복음서가 기록된 당시의 교회 공동체와 복음서를 기록한 저자들의 신학을 지나치게 구분하는 것은 또 다른 오류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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