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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복음서 요한복음 주사랑 202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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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복음서 요한복음

 

◆ 요한복음의 저자는 누구인가?


1. 요한복음 자체의 증언
  요한 복음 역시 저자의 이름이 익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요한복음서를 읽어보면 요한이 이 책을 기록했다는 흔적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기 때문에(아마도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내기 위해서) 우리는 주의를 가지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1) 요한복음서에 나타난 자기 지칭

  요한복음의 서문에서 저자는 "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14), 이러한 증거는 (요일 1:1-4)에도 나타나는데, 요한1서의 저자는 "우리가 말씀을 보고, 주목하고, 만졌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증언들은 요한복음의 저자가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고 접촉했으며, 또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제자?)중에 하나였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의 저자는 (요 19:35)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본 자가 증거 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가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아노라(19:35)." 이 구절에서도 저자는 자신이 "예수님께서 창에 찔린 것을 직접 목격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 21:24)을 보면 저자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21:24)." 이 구절에서 저자는 "이 글을 기록하고 증거한 자가 "이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본문에 나타난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우리가 앞 절(21:20, 23-24)을 잘 살펴보면 이 사람은 바로 "예수의 품에 기대었던 사랑하는 제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는 누구인가?

  그러면 본분에 언급된 "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우리가 복음서를 읽어보면 12제자들 중에서 예수님께 특별히 사랑받은 세 사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다른 제자들보다 가깝게 대하셨고, 가장 중요한 계시를 보여주실 때에도 그들과 함께 동행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요한복음에 언급된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우리가 요한복음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 제자가 종종 언급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 때에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는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예수를 팔자가 누구냐?"고 물었고(21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예수님의 발 밑에 있었으며, 예수님은 자신의 모친을 그 제자에게 부탁하셨습니다(19:26). 또한 그는 베드로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함께 무덤으로 달려갔으며(20:2), 부활 후에 고기 잡는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베드로에게 그 분이 예수님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21장). 이 모든 사항들을 살펴볼 때에 요한복음에 언급된 "주님의 사랑하는 제자"는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 요한"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막 5:37, 9:2, 14:33, 눅 22:8, 행 3:1-2, 4:13, 갈 2:9 참고).

  그러면 왜 요한은 자신을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라고 불렀을까요? 그 이유는 아마도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깊은 하나님의 사랑의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는 요한1서에서만 "사랑"(아가파오)라는 말을 21회나 사용했고, 그가 기록한 다른 책에서도 "사랑"이라는 말이 핵심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깊은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도 요한을 "사랑의 사도"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사랑하는 제자는 요한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견해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요한복음의 저자가 요한이라는 견해에 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의 저자가 요한이라는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은 요한복음의 저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가. 요한 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을 찾아 왔던 부자 청년이었다.

  (막 10:21)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부자 청년을 "
사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막 10:21). 그러므로 일부 학자들은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는 이 부자 청년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부자 청년은 후에 예수님을 믿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기 현재로 이 견해를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나. 요한복음의 저자는 나다나엘이었다.

  또 다른 학자 중에는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는 
나다나엘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보고 진정한 이스라엘 백성이며, 거짓이나 간사한 것이 없다고 하신 말씀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 21장)을 보면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와 구별되고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다.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는 나사로였다.

  일부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나사로와 그 가족을 특별히 사랑하셨다는 기록을 근거로 예수님의 사랑 받은 제자는 
나사로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예수님의 최후 만찬 석장에서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눕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공관복음서에서 이 만찬은 사도들만 참석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라. 요한복음의 저자는 한 개인이 아니라 교회였다.

  또 다른 학자들은 요한복음을 익명으로 기록한 것은 이 책의 저자가 개인이 아니라, 
교회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는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교회, 즉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는 분명히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인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이 견해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가 사도 요한이라는 것을 거부할만한 결정적인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사랑하신 제자가 요한이 아니었다는 분명한 증거가 나타나기 전에는 교회 전통대로 요한복음의 저자를 사도 요한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제 4복음(요한복음)(2): 저자

 

4) 저자의 팔레스타인적 요소


  요한복음을 읽어보면 요한복음의 저자는 
유대관습에 매우 익숙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참고: 2:6: 결례, 7:37, 8:12: 절기, 19:31,42: 정결규례 등). 또한 그는 유대인의 역사에 대해서도 익숙하게 알고 있었습니다(참고: 헤롯 성전의 건축 기간, 유대인의 사마리아인에 대한 태도(4:9), 대제사장에 대한 언급 등). 그리고 그는 팔레스타인의 지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참고: 양문, 실로암 연못, 기드론 골짜기 등). 이러한 점들은 그가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사람이든지, 아니면 팔레스타인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 사람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 목격자적 증언

  또한 요한복음의 저자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사건을 
직접 목격한 사람처럼 그 내용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가나의 혼인 잔치 때에 6개의 물통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증언(2:6),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가로질러 25-30 스타디온 떨어진 곳까지 갔다고 하는 언급(6:19),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바다에 나타나셨을 때에 배가 육지에서 얼마나 떨어졌는지에 대해서도 저자는 매우 상세히 기록(21:8,11)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생한 묘사는 요한복음의 저자가 그 사건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앞에서 생각했던 모든 정황들을 고려하면, 초대교회가 요한복음서의 저자를 사도 요한으로 지목한 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외부적인 증언

  우리는 그 동안 요한복음 자체 내에서 발견되는 저자에 대한 증거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초대교회 지도자들이 요한복음의 저자에 대해서 어떻게 증언하고 있는 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이레니우스는 요한복음서의 저자가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요한이었다고 증거했습니다. 또한 그는 요한이 에베소에서 요한복음서를 기록했고, 요한은 트라얀 황제 때까지 에베소에 머물렀다고 증거했습니다. 유세비우스는 이러한 이레니우스의 증거를 폴리갑을 통해서 들었으며, 또 폴리갑은 그 이야기를 사도들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플로리누스에게 보내는 이레니우스의 편지에도 폴리갑이 사도 요한과 예수님을 만난 다른 사람들과 대화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폴리갑은 사도 요한을 직접 만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증언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증거는 터툴리안,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겐에 의해서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습니다.


3. 요한복음의 저작권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들


  그러나 모두 다 요한복음의 저자가 요한이라고 주장하고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요한복음의 저자가 누구인가? 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견해들이 있습니다.

 1)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의 저자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 동안 살펴 보아온 견해로서 전통적인 견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주장은 반대를 받고 있지만, 이 견해를 논박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제시된 적이 없습니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제가 길게 말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2) 예루살렘의 요한이 요한복음의 저자이다.
  
델프(H. Delf)라는 사람은 대제사장 가문에 속한 예루살렘의 요한이 있었으며, 그가 바로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람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후에 아시아 교회에 영향을 준 요한이 바로 예루살렘에 있던 요한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요한이 유대 율법주의 안에서 훈련을 받고, 주님의 최후의 만찬에 참석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견해를 지지할만한 아무 증거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를 이를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3) 장로 요한이 요한복음의 저자이다.
  유세비우스가 인용한 파피아스의 글에는 장로 요한이라는 사람의 명단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바로 그 사람이 요한복음의 저자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실제 인물인지 불분명하고, 그가 실제인물이었다 해도, 그가 요한복음을 썼다는 명확한 근거는 없습니다.

 4) 요한이 저자가 아니었다.
  일부 학자들 중에는 요한 이외의 사람들로부터 이 책의 저자를 찾으려고 시도해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님을 찾아왔던 
부자 청년이었다고 말합니다(막 10:21). 그러나 부자 청년이 후에 예수님을 믿었는지 알수 없기 때문에 이 견해는 수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요한복음의 저자가 나다나엘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 21장)에서 나다나엘이 분명히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와 구별해서 언급된 것을 보면 이 견해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요한복음의 저자가 나사로였다고 말합니다(11:3). 그러나 나사로가 최후의 만찬석장에서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누웠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관복음서는 이 만찬에 사도들만 있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의 저자는 개인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였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요한복음이 익명으로 기록된 것은 그 책의 저자가 개인이 아니라 교회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는 분명히 역사적으로 존재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이 견해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이와 같이 요한복음의 저자가 요한이 아니라는 견해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해 볼 때에 요한 복음의 저자가 사도 요한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가 발견될 때까지는 교회가 인정해 온 그대로 요한복음의 저자를 사도 요한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 복음서에 나타나는 사도 요한에 대해서

  이제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서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사도 요한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사도 요한은 세베대의 아들로서 사도 야고보의 형제였습니다(막 1:19).
 2) 그는 예수님과 사촌이었으며, 그의 어머니 살로메는 예수님의 이모였습니다(마 27:56, 막 15:40, 요 19:25).
 3) 사도 요한은 아버지와 함께 일을 했던 어부였습니다(막 1:19-20).
 4) 그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로서(갈 2:9), 요한 1,2,3서의 저자였습니다.

 5) 예수님께서는 요한과 그 형제 야고보에게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붙여 주셨는 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막 3:17, 눅 9:52-56).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크신 사랑을 부어 "우뢰의 아들"이었던 요한을 "사랑의 사도"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제4복음(요한복음)(3): 기록 목적

 

1. 저자 자신의 진술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먼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에 대한 사도 요한의 증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요한은 (요 20:31)에서 이 책을 기록한 목적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영생을 얻게 하려함'이라(요 20:31)." 이러한 요한의 진술을 보면 요한복음을 기록한 이유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전해서 그들로 믿고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사람들에게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복된 소식"(복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사람들이 믿어야 할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기를 원했습니다. 요한은 독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한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게 함으로 그들이 구원을 얻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스도(히브리어로 메시아)란 칭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을 가진 유대식 칭호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는 헬라인들에게 잘 알려진 칭호였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는 "세상의 주"요 "신의 아들"로 간주되었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부를 때에 이 두 가지 칭호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요한은 이 책을 기록할 때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자료 중에서 꼭 필요한 자료들을 선별했습니다. 그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전통들도 많이 알고 있었지만, 믿음과 구원이라는 목적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배제했습니다(21:25).

2. 교부들의 증언

  그러면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에 대해 어떻게 증언하고 있을까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이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최후에 요한은 그의 제자들의 요청에 따라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해 다른 복음서에 근거하여 기록했으며, 영적인 복음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였다." 이 증언은 요한이 공관복음서를 참고해서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해 기록했으며, 성령의 영감을 받아 다른 영적인 내용을 추가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3.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에 대한 다른 견해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에 대해서 어떻게 증언했을까요?
 
1) 공관복음 대체용
  
빈디쉬(H. Windisch)라는 사람은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서를 대체할 목적으로 기록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2) 유대인에 대한 반박서
  또 다른 학자들은 요한복음이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 대항하기 위해 쓴 반박 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근거로 요한복음이 유대인들에게 매우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을 제시했습니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요한이 유대인을 반박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처음부터 유대인을 반박하기 위해서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각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3) 영지주의 자에 대한 변증서
  그러나 
스트라찬(R. H. Strachan)은 요한복음이 "영지주의와 싸우기 위해서 기록된 책"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요한이 "도세티즘"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영지주의자들과 싸우기 위해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악한 육신을 입고 왔을 리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은 일도 부정했습니다. 물론 요한복음은 이러한 영지주의자들과 싸우는 데에 매우 유용한 도구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요한복음에는 도세티즘에 반대해서 예수님의 성육신과 고난, 그리고 주님의 인성에 대해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지치고 목말라하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고(4:6-7), 나사로의 무덤에서 우신 일을 기록했으며(11:35), 십자가에서 갈증을 느끼신 일과(19:28), 피와 물을 모두 쏟으신 일 등을 증언하고 있습니다(19:34). 또한 도세티즘에 반대하는 내용은 요한 1-2서에도 매우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복음 안에 이러한 반도세티즘적 요소가 있다고 해서, 처음부터 그들을 대항하기 위해서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분적으로는 요한이 그들을 반대하려는 목적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오직 그것만을 위해서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4) 헬라 세계를 위한 전도서
  또 다른 견해가 비교종교학파에서 제기되었습니다. 그들은 요한복음이 "당시 헬라의 비기독교 세계에 기독교를 전하기 위해서 기록된 책"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요한이 당시 비기독교 적인 헬라 세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그리스도의 삶과 그의 가르침을 기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요한 복음에 나타난 수많은 헬라 사상과 비슷한 용어가 사용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요한이 그리스도를 "말씀"(로고스)로 묘사한 것도 당시 헬라의 "로고스" 사상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이런 견해도 부분적으로 일리가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요한복음은 헬라적인 관점을 가지고 기록된 강력한 보루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꼭 요한복음이 당시 헬라 사상의 용어를 빌려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기록된 책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고스 사상(필로의)과 요한이 사용하는 로고스 사상은 그 의미가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후에 발견된 쿰란 동굴의 문서들을 통해 기독교가 생기기 전에도 헬라주의와 비슷한 글들이 많이 기록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글들로 인해 요한복음이 헬라 세계를 겨냥한 전도용 책이라는 견해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5)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 대한 교정 교육서
  또 다른 학자들은 요한복음이 "
세례 요한에게 교육을 받은 제자들을 교정하기 위해 기록한 책"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에 대해 알지 못하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에베소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행 19:1-7). 일부 학자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사도 요한이 세례 요한을 좆던 제자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그 근거로 요한복음에 그리스도께서 세례 요한보다 뛰어난 분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한 사람이며, 그는 쇠해야 하고 그리스도는 흥해야 한다고 기록한 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3:30). 그들은 요한복음이 예수님의 증거가 세례 요한의 증거보다 우수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합니다(5:33).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상은 이미 다른 복음들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요한복음의 저자가 공과복음서를 참고했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6) 기타
  일부 학자는 요한복음이 "
당시 교회의 그릇된 성례 관과(3:5, 6장)과 종말론(5:25-29)을 바로 잡기 위해 기록한 책"이었다고 말하고, 또는 요한복음이 "예배에 사용하기에 적합한 전승들을 보존하기 위한 예배용 성구집이나, 찬송 형태로 기록한 책"이었다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은 크게 지지를 받고 있는 견해는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에 대해서 다양한 학자들의 주장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러한 모든 주장들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저자의 직접적인 증언입니다. 요한복음서의 저자는 이 책의 기록 목적이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게 하고, 그 이름을 힘입어 구원을 받게 하려고 이 책을 기록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복음의 저자가 이 책을 기록한 목적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로 믿고 구원받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클레멘트의 증언대로 요한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공관복음서의 내용을 참고로 하였으며, 그 외의 영적인 내용을 성령의 영감을 통해서 추가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 4복음(요한복음)(4): 기록 시기

 

◎ 요한복음은 언제 기록되었는가?


  요한복음의 기록 연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요한복음이 이른 시기(예루살렘 멸망(70년) 전)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은 후기(2세기 말엽)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많은 학자들이 지지하고 있는 견해는 요한복음이 
A. D. 90-110년 사이에 기록되었다고 하는 견해입니다. 그러면 요한복음의 기록 시기에 대한 여러 가지 주장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요한 복음서의 초기 사용에 대한 외부적 증거

  초대교회 교부들 중에는 요한복음이 2세기 전반기에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고 증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레니우스는 요한이 노년기에 제 4복음서를 기록했다고 증언했고, 유세비우스도 요한이 노년기에 에베소에서 가르치면서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최초로 발견된 요한복음 사본은 라이랜즈 파피루스(Rylands Papyrus)457이라는 사본입니다. 케년(Sir F. Kenyon)은 이 사본이 2세기 초에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통 기독교인들이나 영지주의자들이 이 사본을 사용한 것을 보면, 이미 초창기에 요한복음이 기록되어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본이 발견되면서 요한복음이 후기(2세기 말)에 기록되었다고 하는 주장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그나티우스가 요한복음을 알고 있었는지?에 대한 문제는 요한복음의 저작 시기를 밝히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그나티우스가 요한복음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이그나티우스가 요한복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그나티우스가 요한복음을 막연하게 인용했든지, 아니면 다른 의미로 바꾸어서 인용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그나티우스가 요한복음서를 알았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요한복음서는 그가 살았던 A.D.110년경이나 혹은 그 전에 기록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그나티우스에 대한 증거는 많은 논란이 있기 때문에 요한복음의 시기를 결정하는 데 명백한 증거로 채택하기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2. 역사적 상황

  우리는 앞에서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요한복음이 영지주의자들에 대항하기 위해서 기록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초기 영지주의 흔적이 일부 나타나기는 하지만, 발달된 후기 영지주의에 대한 증거는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일부 학자들은 요한복음서가 초기 영지주의자들이 활동하던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만일 요한복음이 초기 영지주의인 도세티즘이 제기되었던 때에 기록되었다면, 요한복음의 기록 시기는 1세기 말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도세티즘은 1세기가 지나갈 무렵에 아시아에서 일어났던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도세티즘에 대한 증거는 요한복음보다 요한일서에 더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만일 요한일서와 요한복음이 비슷한 시기에 기록되었다면, 요한복음은 요한일서와 비슷하게 1세기 말에 기록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3. 공관복음서와의 관계

  대부분의 학자들은 요한복음이 복음서 중에서 가장 늦게 기록된 책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이 A.D. 80-85년에 기록된 것으로 보는 사람들은 요한복음이 A.D. 90-95년 경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요한이 마태복음을 잘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요한이 공관복음서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요한복음의 저작 시기를 결정하는 일은 매우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요한복음이 다른 공관복음서보다 늦게 기록되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증언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요한복음서가 1세기 말에 기록된 것으로 간주하게 되었습니다.  

4. 저작권에 관한 결정이 저작 시기에 미치는 효력

  만일 요한복음의 저자가 사도 요한이었다면, 이 책은 그가 살았던 
A.D. 100년 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레니우스는 요한이 트라얀 통치 때까지 살았다고 증언을 했습니다. 이러한 증언은 요한복음서가 적어도 1세기 말에는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일 요한복음의 저자가 사도 요한이 아니라 장로 요한이었다면, 파피아스의 증언대로 요한복음이 기록된 때는 1세기 말 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5. A. D 70년 이전에 기록되었다는 견해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요한복음서가 1세기 말이 아니라 예루살렘 멸망
(A.D. 70년) 전에 기록된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부쉬(V. Burch)는 요한복음서가 A.D. 70년 이전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동안 대부분의 학자들은 요한복음이 1세기 말에 기록된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이론은 당시 사람들을 매우 놀라게 했습니다. 만일 그의 주장대로 요한복음이 70년 이전에 기록되었다면, 요한복음은 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책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견해는 학자들에게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전체가 70년 이전에 기록된 것은 아니라 해도, 그 중에 일부가 70년 이전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일 요한이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그 설교들을 기록했다면, 요한복음 기록 중에 일부는 아주 이른 시기에도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이런 견해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사도 요한이 직접 들은 설교를 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의 일부 내용이 매우 이른 시기에 있었으며, 나중에 요한이 이 내용에 필요한 것을 더 추가해서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견해를 받아들여도, 요한복음이 모두 완성된 시기는 1세기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내적 증거

  우리는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요한복음이 다른 공관복음서 보다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 더 깊이 설명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기록들은 요한복음이 다른 공관복음서보다 나중에 쓰여졌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적 증거는 요한이 다른 복음서를 참고했고, 또 그 내용에 영적인 것을 첨가했다는 초대 교부들의 증언과 일치합니다. 또한 이러한 증거는 요한복음이 다른 복음서들이 기록된 후에 기록되었음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제 4복음(요한복음)(5): 특징

 

◎ 요한복음의 특징은 무엇인가?

1. 구약의 위치

  요한복음의 특징을 말하기 전에 먼저 한 가지 언급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요한복음이 
구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학자들은 계속해서 요한복음이 헬라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 대해서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해서 학자들은 요한복음이 구약의 영향을 받은 점에 대해서는 강조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요한복음이 헬라 사상보다 오히려 구약 성경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서는 유대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찾아 왔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1:11). 요한복음은 유대 성전에 대한 정당한 권위를 주장하고 있으며(2:16), 유대 지도자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유대인의 교사인 "랍비"로 인정하고 있습니다(3:2). 또 요한복음은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을 상고하고 있으며, 그 성경이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모세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도 믿을 것이라고 말함으로 모세와 그리스도의 연속성을 증거하고 있습니다(5:45). 요한복음에 나오는 떡에 관한 설교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만나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6장). 그리고 요한복음은 성령강림에 대해서도 구약성경에 호소하고 있습니다(7:38). 예수님께서 하신 목자에 대한 설교 역시 구약에 나오는 "목자와 양에 대한 비유"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10장),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일도 구약 예언의 성취로 보고 있습니다(12;14). 또한 요한복음은 유대인의 불신앙(사 12:38-39)이나, 예수님의 다리가 꺾이지 않은 일도 구약 성경의 성취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9:36).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와 아브라함을 연결시키고 있으며(8:56), 나다나엘 야곱을 연결짓고 있습니다(1:50-51). 또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 중에는 예수님의 수난과 구약성경에 나오는 구리뱀 사건과 관계된 것입니다(3:14-15). 예수님은 안식일에 대해 모세의 입장에 동의하셨으며(7:22), 선지자 이사야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다고 증거하셨고(12:41), 또한 이사야가 메시아의 선구자인 세례요한에 대해서 예언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1;23). 예수님은 대적들과 토론하실 때에도 항상 구약성경에 호소하셨고, 심지어 구약성경이 자신을 증거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10:34).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요한복음이 헬라 사상의 영향을 받은 점을 너무 강조하지 말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사건이 구약성경의 성취였다는 입장에서 요한복음을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성령에 대한 가르침

  요한복음이 다른 복음과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
성령님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요한복음은 니고데모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 중에 성령님의 거듭나게 하는 사역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요 3장). 또한 자연적 출생과 영적 출생을 구별하는 것은 요한복음에 나타나 있는 중요한 대조법 중에 하나입니다. 요한복음은 성령의 역사는 바람과 같이 파악하기는 어렵지만(3:8), 그 열매는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하늘의 일이 육신이 아니라 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가르침은 육신의 이해가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은 "신령과 진정의 예배"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으며(4:24),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생수의 강(성령)이 그 배에서 넘쳐흐를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7:39).

  성령님에 대한 강조는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예수님의 고별 설교(14-16장)에도 매우 강조되고 있습니다. 요한은 이곳에서 보혜사 성령님의 사역에 대해서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성령님을 보혜사(조언자, 변호사, 위로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고별 설교에서 예수님은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인 안에 내주하실 것이며(14:16-17),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일들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14;26). 요한복음은 성령님이 그리스도를 증거하실 것이며(15;26, 16:24), 죄와, 의, 그리고 심판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하고(16:8-11), 그들을 진리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16;13). 예수님은 죽음 전날 밤에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성령님의 사역에 대해서 많은 가르침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을 자세하게 이야기 한 것은 요한복음 밖에 없습니다.

3. 주요 주제들의 높은 빈도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서와 달리 
추상적인 주제들(빛, 생명, 사랑, 진리, 내주하심 등)에 대해서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상적인 주제들은 요한복음의 곳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1:4)을 보면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이 짧은 구절 안에서 요한은 앞으로 계속해서 반복될 두 가지 주제, 즉 생명과 빛에 대해 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 오셨음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3:15-16,36, 4:47,54, 17:2 등). 또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부르셨고(6:35), 영생의 샘물(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4:14). 예수님은 자신이 다른 사람의 삶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고 하셨습니다(10:10). 또한 요한은 그의 복음서를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기록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요한복음에는 "생명"에 대한 주제가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에는 생명 뿐 아니라, 과 사랑, 그리고 진리와 같은 추상적인 주제들도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제들은 우리가 앞으로 요한복음서를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접하게 될 것입니다.

4. 동적이 아닌 정적인 묘사

  다른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활동과 움직임을 강조한 반면,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활동을 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한은 사건을 다룰 때에 개인적인 관계와 대화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활동이나 이적보다 대화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요한은 사건을 다룰 때에 외적 측면보다 그 사건이 가진 내적 의미를 밝히는 데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이적 사건 후에 항상 대화나 설교를 통해서 그 이적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요한복음의 묘사는 다른 공관복음서에 비해 많은 정적인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제 4복음(요한복음)(6): 특징

5) 일곱 번의 표적에 대한 기록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중에서 특히 7가지의 기적을 선별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이적들 중에서 믿음과 구원에 필요한 7가지를 선별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요한은 이 7가지의 이적을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들을 대표하는 것으로 간주했던 것 같습니다. 이 7가지의 이적은 요한복음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이적들은 모두 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며 또한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7가지의 이적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물을 포도주로 만드심(2:1-12)
 2)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4:46-54)
 3) 38년 된 병자를 고치심(5:1-9)
 4) 5,000명을 먹이심(6:1-14)
 5) 물 위를 걸으심(6:16-21)
 6) 소경을 고치심(9:1-7)
 7)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11:38-44).


  요한복음은 
대화를 전개하는 독특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위와 같은 예수님의 기적(행동)을 기록한 후에, 그 이적이 대화로 발전되고, 이 대화가 다시 예수님의 설교로 이어지는 형태입니다. 이와 같이 여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은 개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회중을 향한 예수님의 설교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6) 예수님의 신성 강조

  
요한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첫째로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이 탸어나기 전에 이미 계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8:58). 이 말은 예수님께서 창세 전부터 존재해 오신 자존자라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표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 사용된 이름이었습니다(출 3:;14). 유대인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듣고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이 외에도 "나는...이다"("에고 에이미"-I am....-)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예수님의 정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사용된 "나는...이다"라는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2)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9:5)
 3) 나는 양의 문이다(10:7)
 4) 나는 
선한 목자다(10:11,14)
 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6) 나는 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7) 나는 참 포도나무다(15:1).


  이러한 표현들은 모두 다 
께서 메시아이시며 신적인 영광을 가지신 분(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한이 위에서 제시한 여러 가지이 이적들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7) 기독론

 가. 인자
  요한복음에는 
에 대한 여러 가지 명칭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인자'라는 칭호는 매우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지만(1:51, 3:13,14 등), 다른 복음서보다는 드물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나. 하나님의 아들
  반면에 "
하나님의 아들"(또는 "아들")이란 칭호는 요한복음에서 매우 자주 인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이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해서 예수님의 인성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다른 복음서보다 더 분명하게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에 대한 기사는 예수님께서 가정적인 배경에서 자랐나셨고, 또한 가정적이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수가성 기사에서 예수님은 지치고 목말라서 물을 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에서 동정심을 느끼시고 깊은 마음의 동요를 느끼고 우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다락방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민하시면서 소리내서 기도하셨고, 또 십자가에서 목말라 하시면서 소리치기도 하셨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모두 다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 메시아
  요한복음에서 "
메시아 사상"을 살펴보는 일은 아주 쉽습니다. 예수님의 몇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직을 수행하던 초기부터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아보았습니다(1:41).특히 예수님은 메시아 사역의 초창기에 수가성 여인에게 자신이 메시아임을 증거하셨고, 그 여인 역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인식하셨습니다(4장).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메시아에 대해서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는 자신이 메시아임을 알리기를 주저하셨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떡을 먹고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지만(6:15),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한적한 것으로 나아가셨습니다.  

 라. 로고스

  요한복음서가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는 가장 특징적인 명칭은 "로고스"입니다(서론). 요한은 예수님을 "말씀"(로고스)로 표현하심으로 예수님께서 창세 전부터 존하셨고, 또 하나님 자신의 본성을 한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명칭은 다른 복음서에는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명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4복음(요한복음)(7): 공관복음과의 관계

 

1.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유사점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서는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동시에 공통적인 면도 많이 있습니다. 우선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은 내용에 공통점이 많습니다.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에는 모두 아래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세례 요한
 2) 제자들을 부르심
 3) 5000명을 먹이심
 4) 제자들의 바다 여행
 5) 베드로의 고백
 6) 예루살렘 입성
 7) 최후의 만찬
 8) 그리스도의 수난.


  또한 약간 다르게 묘사되긴 했지만,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서는 모두 다 
성전 청결 사건과 예수님께서 기름부으심을 받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둘 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장소가 예루살렘이었다고 증언하고 있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일에 대한 요한복음의 설명도 (눅 22:27)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또한 베드로가 많은 고기를 잡은 사건에 대한 묘사도 요한복음은 누가복음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요 21:1-, 눅 5:1-). 그리고 묘사 방법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은 모두 다 예수님의 병고침과 이적 사건의 표본이 되는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통점들은 요한복음이 독자적으로 기록되었다기 보다는, 공관복음을 토대로 해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차이점


  그러나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공통점 뿐 아니라 
다른 점들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서에 있는 내용 중에서 생략된 부분이 많습니다. 요한복음은 다음과 같은 공관복음서의 내용들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1) 동정녀 탄생
 2) 세례
 3) 시험과 변화산 사건
 4) 귀신들린 자와 문둥병자의 치료
 5) 비유
 6) 주님의 만찬 제도
 7) 겟세마네의 고민, 버림받고 부르짖는 모습
 8) 승천에 대한 기록.


  그러면 왜 요한복음에는 이러한 사건들이 생략되었을까요? 일부 학자들은 요한이 공관복음서 자료들 중에서 역사적 특성을 제거한 후에, 그 중에서 자신의 신학적인 구조에 불필요한 내용을 생략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요한복음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무조건 받아들이는 일은 조심해야 합니다.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요한복음을 기록할 당시에 공관복음서가 널리 알려져 있었고, 따라서 요한이 반복해서 기록할 필요가 없어서 일부 자료를 생략했을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둘째로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에 없는 내용이 첨가된 것도 많습니다(90%). 요한복음에 추가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서문(1:1,18)
 2) 나다나엘의 고백(1:43-51)
 3) 가나의 이적(2;1-12)
 4) 니고데모 사건(3장)
 5) 수가 성 여인 사건(4장)
 6) 생명의 물(4:6-29)
 7) 주님의 신성 주장(5:19-47)
 7) 예루살렘에서 앉은뱅이와 봉사를 고치신 사건
 8) 생명의 떡(6:22-71)
 9) 세상의 빛(8:12-59)
 10) 선한 목자(10:1-30)
 11) 나사로가 살아난 사건(11장)
 12) 다락방 설교(13:1-16:33)
 13) 주님의 중보 기도(17:1-26)
 14) 주님의 고난을 설명하는 부분.


  그러면 왜 요한은 공관복음서에 없는 수많은 자료들을 첨가했을까요? 아마도 그 이유는-초대 교부의 증언과 같이-요한이 공관복음서에 없는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서 요한복음을 기록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셋째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에 비해서 사건에 대한 기록이 적고, 그 대신에 긴 설교들이 많이 나옵니다. 또한 요한복음의 서문은 공관복음에 비해서 매우 철학적으로 진술되어 있고,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에 나타난 비유들이 대부분 생략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일부 학자들은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내용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두 복음서가 설명 방식에 있어서는 다소 다르지만, 결국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설교 내용과 전달 방식은 설교를 듣는 대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독자가 학식있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공관복음서의 독자는 갈릴리의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공관복음서가 일반 대중을 위한 설교에 초점을 맞춘 반면, 요한복음은 설교 후에 일어난 소수의 사람들과 나눈 깊은 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교 내용과 방식이 다른 점은 이러한 점에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넷째, 이 외에도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기록이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성전청결 사건이 두 번 기록된 반면, 공관복음에는 한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성전 청결 사건으로 인해 체포되셨기 때문에 성전청결 사건을 한 번만 기록한 공관복음의 기록이 정확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기록과 같이 성전청결 사건이 두 번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공관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지키신 유월절을 한 번만 기록하고 있지만,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일을 여러 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유월절(2:23)
 2) 무명의 절기(5:1)
 3) 유월절(6:4)
 4) 장막절(7:2)
 5) 수전절(10:22)
 6) 유월절(13:1).


  유월절이 한번 기록된 공관복음이 기록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이 마치 1년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을 보면 유월절을 지킨 일이 최소한 3번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의 공생애가 3년이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공관복음에 유월절이 한 번만 기록되었다고 해서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이 1년이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관복음서 기자들이 필요에 의해서 중간 유월절을 생략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또 시간을 언급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요 19:13-14). 이러한 일로 인해서 일부 학자들은 신약시대에 두 종류의 달력과 시간 계산법(유대식과 로마식)이 함께 사용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시간 언급이 다른 것은 요한과 공관복음서의 기자들이 서로 다른 달력과 시간계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3. 요한복음과 공관 복음의 관계

  그러면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에 이러한 유사점과 차이점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가.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왜 요한복음에 공관복음과 유사한 내용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지를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실상 요한이 공관복음서를 알지 못하고 요한복음을 기록했다는 가정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견해입니다. 이 견해는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서보다 먼저 기록되었다고 가정해야만 가능한 주장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요한복음이 공관복음보다 늦게 기록되었다는 점에 있어서 서로 일치하고 있습니다.

 나.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를 해석하고 있다.
  이 견해는 지지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견해는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서를 해설한 책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견해의 경우에 요한복음은 역사적인 기록이 아니라, 공관복음서를 해설한 해설서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도 받아들이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견해는 왜 요한이 공관복음서의 모든 부분을 해설하지 않고, 일부분만 설명하고 있는지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서의 해설서였다면, 요한복음은 공관복음 전체를 해설했을 것이며, 그렇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두꺼운 책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을 대체하기 위해 기록했다.     
  이 견해는 가장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견해입니다. 어떤 사람은 요한이 공관복음서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복음으로 대체하기 위해서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만일 요한이 이러한 목적으로 요한복음을 기록했다면 요한의 의도는 실패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초대 교회는 물론 지금까지도 모든 교회들이 공관복음을 널리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의 내용을 보충하고 있다.

  이 견해는 가장 많은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견해입니다. 이 견해는 요한이 공관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을 보충하고, 그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 요한복음을 기록했다는 입장입니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요한이 공관복음의 내용 중에 일부를 생략한 이유는 이미 성도들에게 잘 알려진 내용들을 중복해서 기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할 당시에 공관복음서의 내용이 성도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었고, 따라서 요한이 자신의 목적에 일치하지 않는 일부 내용을 과감히 생략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견해는 왜 요한이 공관복음서에 없는 내용을 많이 추가했는지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기록에 대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한 전승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도들이 모두 다 세상을 떠나고 요한만 남았을 때에 주변 사람들은 요한에게 세상을 떠나기 전에 공관복음에 기록되지 않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요한은 그 요청을 받고 공관복음서에 없는 내용들을 추가해서 요한복음을 기록했다." 이러한 전승이 사실이라면 요한은 공관복음서에 없는 주님에 대한 기사를 많이 보충했을 것이며, 또 다른 자료들을 참고해서 필요한 내용을 첨가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때에 요한이나 그의 독자들은 공관복음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제4복음(요한복음)(8): 요한복음의 배경

 

◎ 요한복음서의 배경


  모든 신약의 책들의 배경을 연구하는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요한복음의 경우에는 배경에 대한 연구가 더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해석은 요한복음의 저자와 기록 당시의 주변 환경에 대한 여러 가지 연구들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학자들이 요한복음의 기록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배경 요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원시 기독교

  요한복음서는 
초대기독교 역사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서가 초대기독교 역사 속에서 기록되었고, 또한 원시 기독교신학의 배경 속에서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만일 요한복음서의 저자가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었거나, 그 목격자들과 직접 접촉한 사람이라면 이 사실은 더 분명해집니다. 우리는 앞에서 요한복음이 공관복음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한복음은 강조점은 다르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공관복음과 상충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관복음서가 원시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요한복음 역시 초대기독교의 역사와 신학의 배경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바울주의

  어떤 사람들은 요한복음서가 
바울 서신의 영향을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요한복음의 저자는 바울의 신봉자였으며, 요한복음서는 바울의 가르침을 발전시킨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정 하에서 그들은 바울 신학보다 한 단계 더 완성된 기독교신학을 요한복음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다드(C.H. Dodd)는 바울 서신을 통해서 요한복음서를 해석하는 일에 대해 매우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3. 유대주의

  일부 학자들은 요한복음서의 기록에 영향을 미친 것은 
유대주의였다고 주장합니다. 요한이 당시의 유대주의와 접촉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요한 역시 유대주의 전통에서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복음서가 유대주의의 영향으로 기록되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르침은 유대 랍비들의 가르침과 동일한 요소보다 다른 점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요한복음서에 유대교의 한 분파였던  엣센파의 흔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에센파에 대한 쿰란 문헌의 기록을 보면 요한복음에 나타난 여러 가지 추상적인 진리들(빛, 진리, 어둠...)이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 문서들이 발견되기 전에는 학자들이 이러한 추상적인 주제들이 헬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문헌들이 발견되면서 그 주장은 근거를 잃고 말았습니다. 브라운은 요한복음서의 저자가 쿰란 문헌의 사상과 표현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요한복음서의 저자가 복음서를 기록할 때에 얼마나 쿰란문헌에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4. 헤르메틱 문헌

  또 다른 학자들은 요한복음서가 
헤르메티카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헤르메티카는 이집트의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Hermes Trismegistus)에서 기원된 철학-종교 문학의 한 형태였습니다. 이 문학은 주로 2-3세기에 시작되서 매우 오랫 동안 지속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드(C.H. Dodd)는 요한복음서가 헤르메티카와 많은 부문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요한이 헤르메티카의 문학적 용법을 차용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헤르메틱과 요한복음은 그 특징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요한복음은 헤르메티카보다 70인경과 언어적으로 더 유사성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은 헤르메티카 보다는 70인경을 토대로 기록했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5. 필로주의

  또 다른 사람들은 요한복음서가 
필로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기록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는 헬라적 유대주의자의 대표로, 그들 중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요한복음의 서문이 필로주의의 영향을 받아 기록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요한복음의 서문은 필로의 논법에 의해 해석되어야 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로고스 사상의 기원을 히브리 사상에서 찾으려는 시도로 인해 그 영향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필로는 헬라적 유대주의자로 기독교 역사에 많은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에, 그의 교훈 방법이 요한복음 형성에 미친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필로와 요한은 모두 확실한 상징주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예) 하나님을 빛, 샘물, 목자 등으로 묘사하는 것). 그러나 이러한 유사성은 주변적인 것에 불과하며, 사실상 요한의 로고스 사상은 필로의 로고스 사상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6. 영지주의

  학자들은 요한복음서가 
영지주의(Gnosticism)에 영향을 입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로 인해서 후기에 발전된 영지주의는 초기 단계의 영지주의와 다른 것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만일 요한복음서가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가정하면, 그 영향을 준 것은 초기 영지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지주의 문학은 후기 단계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초기 영지주의 사상이 어떤 것이었는 지 알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서가 기록된 때는 아시아에서 이방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 영지주의가 나타났을 때였습니다. 학자들은 요한이 영지주의의 한 형태인 도세티즘에 대해 기독교를 변호하기 위해서 요한복음서를 썼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후기 영지주의가 요한복음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7. 맨다이즘(Mandaism)

  불트만과 바우어는 맨다이즘(Mandaism)이 요한복음서 기록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라에젠스타인은 맨다이즘이 발생한 시기가 매우 늦기 때문에, 요한복음이 그 영향을 받았을 리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데아(Mandea) 문헌이 요한복음서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만일 요한복음 안에 만데아 문헌과 병행되는 구절이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만데아 문헌이 먼저 기록된 요한복음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불트만과 바우어 외에는 이 견해를 좋게 평가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4복음(요한복음)(9): 요한복음의 역사성

 

◎ 요한복음서의 역사성


1. 19세기에 
스트라우스(D. Strauss)는 "요한복음의 내용이 믿을만한 것인가?" 에 대해서 연구했습니다. 그는 그 연구의 결과로 요한복음 안에는 역사보다 신화가 더 많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연구가 발표된 후에 수많은 학자들은 요한복음서에서 역사적인 예수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러한 일로 인해서 학자들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이 서로 조화시킬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해왔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요한복음이 역사적인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지 않고, 자신의 신학에 따라 재구성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독자들에게 믿음과 구원을 얻게 하려면 그가 자신이 가진 자료들을 자기 의도대로 편집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한 책이 저자의 신학에 의해 재구성되었다고 해서 그 내용을 모두 비역사 적인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으로도 얼마든지 저자의 신학을 따라 진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또한 슈미델(P. Schmidel)이란 학자도 요한복음의 내용이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는 (요 2장)에 기록된 가나 혼인 잔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 사건들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물을 채웠던 6개의 돌 항아리를 율법의 기간(6주간)을 상징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는 6개의 통에 부었던 물은 구약의 율법을 상징하고, 예수님께서 만드신 포도주는 복음을 상징한다고 말했습니다. 슈미델은 요한복음의 내용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상징과 비유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3. 그리고 일부 학자들은 요한복음이 역사성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역사가 아니라 요한의 입장에서 역사를 재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요한이 사건을 기술할 때에 있는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그 역사를 자신의 신학적 입장에서 해석을 덧붙였다고 말했습니다. 공관복음에는 성전정화 사건이 한 번 기록된 반면에, 요한복음에는 성전 청결 사건이 두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요한이 성전 정화 사건을 그대로 쓴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지닌 의미를 해설하는 입장에서 기록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이 해석된 역사라고 해도, 요한복음의 내용을 모두 비 역사 적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적 특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그 사건을 해설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4. 근대 학자인 마틴(J. L. Martin)은 요한복음서에 기록된 역사는 재평가된 역사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는 요한이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기록할 때에, 있는 그대로 기록하지 않고 그 시대 독자들의 상황과 요구에 따라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마틴은 (요 9장)에 나오는 소경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는 9장에 나오는 소경이 1차적으로 예수님 당시에 고침을 받은 소경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 소경은 당시의 소경일 뿐 아니라,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할 때의 기독교인들도 상징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요한이 이 기록을 통해서 영적 소경인 사람들이 눈을 뜨게 되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려고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5. 결론: 요한복음의 역사성에 대한 우리의 입장

  이러한 다양한 견해들로 인해서 요한복음의 역사성에 대해 많은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해서 학자들은 요한이 자신의 목적과 신학적 입장에서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서 역사적 사실을 얼마나 변경하고 조작했는지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은 요한이 "이 책을 기록한 목적?"에 대해 밝힌 것을 보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는 요한복음이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 기록했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요한이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구원을 받게 하려고 복음서를 기록했다면, 그는 신화나 허구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들을 증거로 제시해야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화나 꾸며낸 말로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이 실제로 목격하거나 목격자를 통해서 얻은 역사적인 자료들을 가지고 예수님이 메시아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점에서 요한복음의 내용은 역사성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복음이 비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교회가 해왔던 것처럼 요한복음의 내용을 역사적인 것으로 간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요한복음의 내용을 비역사적인 것으로 가정해 온 양식 비평가들의 견해를 주의 깊게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에 행해진 일단의 연구결과들로 인해서 양식 비평가들의 견해들은 계속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요한 복음의 역사성에 대해 생각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한복음에서 저자가 자신이 기록한 내용이 사실이라고 증언하고 있는 점입니다. 저자는 요한복음서에서 자신이 직접 목격한 내용을 기록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9:35, 20:30-31, 21:24). 이러한 증언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내용이 실제로 목격한 사실이라는 강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합리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요한복음의 내용을 비역사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일은 위험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복음서의 내용이 요한이 직접 목격하거나, 목격자들을 통해 얻은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제4복음(요한복음)(10): 요한복음의 내용

 

1. 요한복음의 지리와 시간적인 묘사


  요한은 공관복음의 저자들과는 
시간적, 지리적인 면에서 다른 형태로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공관복음서는 대체로 예수님께서 지리적으로 이동하신 경로를 요단강(세례)-갈릴리(가버나움)와 그 주변, 그리고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과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들의 순서를 따라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관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한 번 방문하셔서 유월절을 지킨 것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의 지리적 이동을 복잡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일하던 곳(사해 복쪽 부근)에서 시작해서(1:28), 갈릴리로 가셨다가(1:43), 가나(2:1)와 가버나움을 거쳐서(2:12), 첫 번째 예루살렘(2:13)과 유대를 방문하셨습니다(3:22).
2) 그 후에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거쳐서(4:5) 갈릴리로 가셨다가(4:43), 가나와 가버나움에서 전도하신 후에 두 번째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습니다(5:1). 3) 그 후에 예수님은 다시 갈릴리 바다(6:1), 가버나움(6:59), 그리고 갈릴리에서 사역하신 후에(7:1), 세 번째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습니다(7:10). 이때에 예수님은 성전을 방문하셨고(7:14, 10:23), 그 후에 요단강 동편으로 가셨으며(10:40). 다시 베다니(11:1)-에브라임(예루살렘 북쪽 24km)-베다니(12:1)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고난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4) 그후에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바다로 가셔서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21장).

  공관복음서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방문을 한 번만 기록했지만,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방문을 세 번이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킨 것도 세 번 기록했습니다(14:1,12,14,16 과 요 2:13-23, 6:4, 11:55, 12:1, 13:1 비교). 우리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3년 반 정도로 계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요한복음의 기록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요한복음은 지리적인 이동과 시간에 대해서 공관복음과 많은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요한복음의 내용 분해

 1) 준비(1장)

 가. 서론(1:1-18)
  * 말씀과 하나님(1-2)
  * 말씀과 창조(3-5)
  * 말씀과 세례 요한(6-8)
  * 성육신하신 말씀(9-14)
  *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말씀(15-18)

 
나. 공생애 시작(1:19-51)
  * 세례요한의 증거(19-34): 요한과 바리새인(19-28)-요한과 예수님(29-34)
  * 첫째 제자들(35-51): 안드레,베드로(35-51),빌립,나다나엘(43-51)

 2) 7대 표적과 공적인(7대) 논쟁들(2:1-12:50)

 
가. 첫 번째 표적: 가나에서 물을 포도주로(2:1-11)
  * 성전 청결(2:13-25)
  a) 첫 번째 논쟁: 니고데모-새로운 탄생(중생)에 대하여(3:1-36)
  * 예수와 세례 요한(3:22-36)
  b) 두 번째 논쟁: 수가 성 여인-생명의 물(4:1-42)

 
나. 두 번째 표적: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침(4:46-54)

 다. 세 번째 표적: 앉은뱅이를 고침(5:1-18)

  c) 세 번째 논쟁: 하나님의 아들(5:19-47)


 
라. 네 번째 표적: 5병2어(6:1-15)

 마. 다섯 번째 표적: 바다 위를 걸으심(6:16-21)
 
 d) 네 번째 논쟁: 생명의 떡(6:22-66)
  * 베드로의 고백(6:67-71)
  e) 다섯 번째 논쟁: 생명을 주는 영(7:1-52)
  f) 여섯 번째 논쟁: 세상의 빛(8:12-59)


 
바. 여섯 번째 표적: 소경을 고치심(9:1-42)
  g) 일곱 번째 논쟁: 선한 목자(10:1-42)

 
사. 일곱 번째 표적: 나사로의 부활 (11:1-57)
  * 공생애 종막(12:1-50): 베다니에서, 예루살렘 입성, 마지막 증언

 3) 고별 설교와 대제사장 기도(13-17장)

 가. 두 가지 중요한 모범 행위

  *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13:1-30)
  * 섬김(13;12-20)
  * 배신에 대한 예고(13:21-30)

 
나. 제자들의 질문과 대답(13;31-14:31)
  * 새 계명(13:31-35)
  * 거부 당하실 일에 대한 예고(13:36-38)
  * 길, 진리, 생명이신 그리스도(14:1-7)
  * 아버지와 아들(14:8-14)
  * 성령이 오셔서 하실 일(14:15-17)
  *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심(14:18-31)

 
다. 참 포도나무(15:1-16)
 라. 박해 예고(15:17-25)
 마. 보혜사 성령의 사역(15:26-16:15)
 바. 제자들이 당할 어려움과 위로(16:16-33)
 사. 예수께서 하신 대제사장의 기도(17:1-26)

 4)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18-20장)
 
가. 종교 지도자들의 심문과 베드로의 부인(18:13-27)

 나. 로마 사람의 재판(18:28-19:16)

 다. 사형에 처함, 장사(19:17-42)

 라. 부활(20:1-29)

  * 빈 무덤(20;1-10)
  * 부활 후 나타나심(20:11-29); 마리아, 10 제자, 도마
  * 복음서를 쓴 목적(20:30-)

 5) 부록: 끝맺는 말(21:1-25)
 
가. 이적으로 많은 고기를 잡음(1-14)

 나. 회복된 베드로(15-19)

 다. 사랑을 받은 제자의 역할(20-23)

 라. 이 복음의 증거의 확실성(24-)

 * 부록: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자(7:53-8:11)

3. 4복음서 서론에 대한 결론

  
그동안 우리는 공관복음서와 제 4복음서에 대한 서론적인 고찰을 했습니다. 우리가 메시아 예수께서 누구시며, 또 그 분의 가르침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4권의 복음서로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에 대한 모든 연구를 이 네 권의 책에 의존하게 될 것입니다. 이 4권의 책들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이 4권의 복음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역사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이 4권의 역사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역사적 사실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둘째, 그러나 이 책들은 
역사적인 것을 넘어서는 것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님을 통해서 주시는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서의 각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셋째, 또 4권의 복음서는 역사와 계시 뿐 아니라, 우리에게 도전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4권의 복음서의 각 쪽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을 하게될 것입니다. 그 도전은 바로 "너희는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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